[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메타버스가 대학 교육에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우운택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원장은 현재 메타버스의 발전 수준에서는 전통적 강의를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오히려 메타버스의 개방성이라는 특징을 볼 때 플립드러닝이나 상호작용이 중요한 프로젝트형 수업에 적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메타버스를 교육에 활용하기 위한 플랫폼과 같은 인프라는 사회간접자본이기에 정부 차원에서 나서 공통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타버스 시대 대학의 역할은 메타버스를 어떻게 활용할지 그 방법을 고민해 학생들이 대학에 올 이유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우운택 원장은 14일 본지가 주최한 ‘2021 일반대 UCN 프레지던트 서밋’ 2차 콘퍼런스에서 첫 강연자로 나와 ‘메타버스 시대의 가상증강현실과 교육’을 주제로 강연했다. 서밋 2차 콘퍼런스는 미래 교육을 대비하기 위해 최근 교육 영역에서 주목받고 있는 메타버스 기술의 교육 분야 적용을 대주제로 진행됐다.
이날 행사는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웨비나로 진행됐다. 메타버스에 주목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드러난 단면이었다. 인류의 삶이 획기적으로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 것이다. 온라인이라는 가상현실과 실제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물리적 현실이 연결된 지점에서 인류의 삶이 전개될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우운택 원장은 “작년 1월만 하더라도 마스크를 쓰고 온라인으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가 굉장히 빠르게 바뀌고 있다. 코로나19가 극복되더라도 우리의 일상은 늘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것이 될 것”이라며 “이런 경험은 일시적이지 않다. 우리는 앞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되는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야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코로나19로 전통적 교육방식인 ‘대면 교육’에 어려움을 맞은 교육 기관들 역시 가상현실에서의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대학들은 오프라인 교육 대신 원격 교육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고 그 가운데서 메타버스라는 개념을 도입하기도 했다. 학교 축제 역시 메타버스로 여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우운택 원장은 지금 현재의 메타버스 기술을 교육에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데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메타버스의 가능성과 도입 필요성은 차치하고 가장 중요한 메타버스의 교육적 효과가 문제였다.
그는 “대표적인 교육 플랫폼으로 소개되는 ‘개더타운(Gather Town)’과 같은 것들이 있지만 이는 진지한 회의나 학습에는 효과적이지 않다”며 “아바타와 사람과의 일체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학습자와 교수자의 소통 측면에서 많은 것을 제한한다. 특히 교수자의 경우 말이나 글로 표현될 수 없는 눈빛, 움직임, 표정과 같은 비언어적 요소로 학습자의 습득 정도를 파악하며 그에 맞게 강의를 진행해야 하지만 현재 가상 교육 환경 플랫폼은 이를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우운택 원장은 “교육플랫폼은 강의실이 꾸며져 있고 칠판이 놓여있고, PPT나 강의 자료 화면을 보여주는 환경이다. 학생들은 아바타를 통해 이 공간에 오게 된다. 교수자도 학습자도 아바타를 통해 이 공간에 있다”며 “문제는 아바타의 움직임과 내 움직임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아바타는 실제 나의 움직임과 달리 마우스와 키보드로 움직인다. 선생님 입장에서도 학생들의 눈빛을 직접 보고 마주하며 교육할 수 없는 공간”이라고 그 한계를 설명했다.
그런 이유로 우운택 원장은 가상세계에 만든 교육 환경이 현재는 ‘흉내’에 불과하다고 봤다. 그는 “지금은 실제 수업을 흉내 내는 가상현실 강의가 있을 뿐이다. 실제 칠판에 글씨를 쓰는 것을 가상현실에서 흉내 내거나 아바타의 몸짓으로 학생과 대화할 수 있지만 여전히 불편한 것이 많다. 학생의 눈빛을 보며 내 수업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 수 없다”며 “화상으로 수업을 하더라도 학생이 짓는 표정이 내 강의를 듣고 짓는 표정인지 웹툰을 보며 짓는 표정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우운택 원장은 이런 상황에서 메타버스를 섣부르게 도입하는 것을 크게 경계했다. 그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목적과 수단이 혼동되는 경우가 있다. 메타버스는 어디까지나 교육을 잘 하기 위한 도구로 쓰여야 한다. 하지만 메타버스라는 기술을 활용하는 게 교육의 목표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것 같다”며 “메타버스는 교육의 효과적 도구라는 것이 검증됐을 때 교육에 적용돼야 한다. 새로운 기술이라고 무조건 교육에 쓴다는 건 바람직한 접근법이 아니라고 본다”고 역설했다.
이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때 ‘비용’ 문제도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비용이 줄어들면 사람에게 나쁘더라도 솔루션으로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 비용에는 사람도 포함돼야 한다. 사람이 쓸 때 행복한 기술인가, 인류를 위한 기술인가가 비용 산출에 고려돼야 한다”고 전했다.
다만 메타버스가 플립드러닝에 활용되는 형태에서는 주목할 점이 있다고 전했다. 아바타로 소통하는 가상세계, 메타버스는 자연스러운 플립드러닝이 가능한 환경이라는 점 때문이다.
우운택 원장은 “미국 10대의 75%가 ‘로블록스’에 가입돼 있다. 게임공간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그곳에서 ‘학교’를 다닌다. 선생님은 따로 없다. 누구나 선생님이 될 수도 학생이 될 수도 있다. 수억 명의 인구가 가입돼 있는 로블록스에는 그만큼 많은 전문가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전문적 지식이나 경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나이나 경력에 관계 없이 누구나 자신의 전문성을 누군가에게 가르쳐 줄 수 있다. 문제를 갖고 있는 누구나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답을 얻을 수 있다. 만약 문제를 해결해주기 어렵다면 집단지성으로 해결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전통적 교육에 메타버스를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메타버스가 가진 속성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로블록스는 기존에는 게임 제작자가 만든 것을 제공받던 사용자가 반대로 쉽게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온라인 게임 제작 시스템이자 플랫폼이다. 우운택 원장에 따르면 로블록스의 이러한 시도는 게임 분야의 메타버스의 대표 사례이자, 메타버스로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대표 사례로 언급된다.
또한 메타버스 교육 플랫폼을 개별 기관마다 개발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 봤다. 오히려 사회간접자본이라고 보고 정부 차원에서 공용 플랫폼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운택 원장은 “메타버스가 주목을 받으면서 대학뿐만 아니라 많은 지자체가 각자 자기의 플랫폼을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정말 비효율적인 방법”이라며 “메타버스는 사회간접자본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인터넷처럼 고속도로나 수도, 전기처럼 누구나 이를 사용하게 만드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이미 돈이 되는 영역에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에 정부는 돈이 되지 않는 영역에서 반드시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나서야 한다”며 “대학이 공통으로 쓸 메타버스 플랫폼을 확보하도록 교육부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부 주도로 공용 플랫폼이 개발되는 동안 대학의 할 일은 활용 방법과 콘텐츠 개발이라고 조언한다. 우운택 원장은 “이미 전 세계의 권위있는 학자들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전 세계에서 학생들이 시공간을 초월해 그들과 만나고 있다. 전 세계 누구나 교육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제 학생들이 대학에 갈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플랫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대학에 학생들이 오도록 만들기 위해 메타버스의 활용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메타버스를 통해 교육할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자리 역시 없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오덕성 우송대 총장은 “메타버스를 활용한 강의에 대해 반응이 좋아 실험실습과목에 대체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어떤 교육과목에 적용하는 것이 적합한가”를 질문했다.
우운택 원장은 “메타버스 시대에 대비해 대학이 할 일은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다. 학생이 필요로하고 그 대학만이 만들 수 있는 콘텐츠가 경쟁력이 있다”며 “오픈 플랫폼인 메타버스의 장점을 살린 과목이 도입에 적합할 것이다. 일방적 강의가 아닌 ‘토론’을 하는 강의다. 협력을 해서 프로젝트를 하는 상호작용이 주가 되는 수업에는 메타버스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메타버스가 교육은 물론 일상에 활용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운택 원장은 우리가 현실세계에서 정보를 습득하는 방법을 기술적으로 구현해야 하는 데 주목한다. 핵심은 정보가 제공되는 면적의 차이다.
현재 가상현실과 정보를 교류하는 수단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대표적인데, 이 둘 모두 ‘창’이라는 한계가 있다. 인간에게 현재의 가상현실은 그 창에 제한돼 있는 것이다. 눈 닿는 곳 어디에서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현실세계와의 가장 큰 차이다. 그렇기에 현실세계에서 정보를 얻을 때 만큼의 자유도를 갖는 ‘장치’를 일상생활에서 불편함 없이 쓸 수 있어야 한다. 우운택 원장은 안경 형태의 스마트 장치에 주목한다. 그는 “안경형 디스플레이가 보급될 때 메타버스 시장 역시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우 원장은 “가상현실을 인터넷과 키보드, 마우스로 경험하던 1세대 메타버스가 이미 있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2세대다. 하지만 메타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것은 이 장치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많고 그들에게는 그 디바이스로 구현되는 가상공간 역시 불편한 공간이기 때문”이라며 “인간이 쓸 수 있는 안경의 무게는 70g 미만이다. 이 정도 무게의 가벼운 그리고 줌 없이 자유롭게 보며 가상세계를 경험할 수 있고 그것이 일상화된다면 메타버스가 일상화되는 시점이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세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할 때 필요한 기술의 적용과 가상세계에서의 규범, 법 질서 등도 갖춰져야 궁극적인 메타버스가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그렇다면 현재 상황에서 메타버스의 활용을 비관적으로만 봐야 할까.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이자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든 지금, 메타버스의 확산은 어렵지 않게 전망된다. 황윤원 중원대 총장 역시 “설명을 들어보면 고등교육에 메타버스를 적용하는 것은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메타버스에 대한 대학의 긍정적 기대가 무척 크다. 교육도구로서 메타버스에 대한 희망적 이야기는 어려운가”라고 질문하며 낙관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이에 우운택 원장은 “좋은 소식이 있다. 메타버스의 기술 생태계 관점에서 보면 필요한 기술 요소를 이미 다 갖고 있다. 다만 꿰는 것을 안 했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기술력이 뒤떨어지지 않고 우리나라 정부도 생각을 하고 있기에 잘 꿰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며 “우선 지금은 아쉬운대로 이미 개발된 ‘제페토’와 같은 플랫폼을 활용해 그 플랫폼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과목부터 시도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인원 본지 회장은 이날 서밋에서 “메타버스와 교육혁명에 대해 논의했는데 최근 우리나라의 문화 콘텐츠가 세계에서 각광받고 있듯 우리나라 교육도 콘텐츠는 물론 우리나라 교육의 학습방법이 세계의 모범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